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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아니 너와 나라는 개체의 이야기가 끝난 것을 나는 안다.
이 소리없는 울림이 너에게 닿지 않으리라는 것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이러한, 이러한 글자를 써내리는 이유는 아주 먼 훗날 네 이름을 들었을때,

그 가슴떨리는 숨막히는 글자를 들었을때, 숨 쉬기 위해서라고. 나는 자기위안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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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Tik.

 

손에 쥔 두 개의 시계. 
너의 손으로부터 전해받은 내 생명의 방아쇠를 나는 하염없이 내려본다.

 

머릿속에서는 온갖 향기가 소용돌이 치고 맴돌고 흩어진다.

 

 

메마른 입술을 축이고 눈을 내리감는다.
모든 게 담겼으면서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시계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나는 구태여 그 시계의 박동을 느끼고자 손으로 그것을 움켜쥔다. 손바닥 사이로 네 심장소리와 같은 태엽의 움직임이 틱,틱 소리를 내며 흩어진다.

 

 

 

 

 

"빌어먹을 시계."

 

 

 

 

다시 눈을 내리감는다. 
감아지지않는 시계소리와 부숴지는 소릴 내며 째깍이는 가슴께의 고동에.
나는 다시 눈을 내리감는다.

 

 

 

 

 

 

 

 

 

 

 

 

 

 

 

 

 

 

 

 

 

 

 

 

 

 

*

 

 

 

 

 

02. Deny.

 

 

인간이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첫번째로. 거절을 한다. 현실에 대한 거절.

 

참으로 비겁하고 치졸한 변명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나는 거절했다.

 

온 세상이 새까맣게 불 탈만큼,
온 소리가 숨죽여 날숨을 내뱉을만큼,
타다 만 초의 심지가 다시 불붙을만큼

 

새빨갛고 새까맣고 무너져내리는.

 

 

 

그 몇 음절 되지 않는 너의 고백에 나는 거절을 표했다.
나는 분명히- 지금 겁 먹은 것이다. 너에게.

 

 

 

 

 

 

 

 

 

 

 

 

 

 

 

 

 

 

 

 

*

 

 

03. 자기방어.

 

 

나는 위안한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몇번이고 되돌아오는 끔찍히도 새까만 소유욕이 타인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고.
몇 번이고 고갤 돌리고
몇 번이고 숨을 멈추고
내 선택을 올바르다 아이마냥 고집을 피운다.

 

아니, 정정한다. 옳은 것이었다고 '고집'을 피우는 중이다.

 

 

 

 

 

 

 

 

 

 

 

 

 

 

 

 

 

 

 

 

 

 

 

*

 

 

04. 넥타이와 목줄.

 

 

숨 쉴 수 없을만치 목을 죄이는 넥타이에 짜증스레 미간을 좁힌다.
분내와 향내로 점철된 여자들이 방에 들이닥친다.
누구와 몸을 섞는지, 누구의 설육이 제 입안에 흘러들어오는지

 

ㅡ나는. 단 하나도 알 수 없다.

 

알 수도, 볼 수도 없다.

 

 

 

 

넥타이가 스륵, 하는 작은 노이즈와 함께 끌러내려진다. 꽉 매어진 그것이 흘러내렸음에도 나는 켁켁 소릴 내며 누구인지도 모르는 여자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혀를 얽고 입술을 탐하고 네가 그리했듯이 목줄기를 따라 입맞추고 쇄골에,손가락에 쉴 새 없이 입을 맞춘다.

 

교태섞인 아양이 입술을 타고 새나온다. 그러나 이 숨막히는 순간에도. 나는 눈 앞의 콜걸에게 집중할 수 없다. 
너와 쏙 빼닮은 새까만 곱슬머리.
너와 쏙 빼닮은 고양이같은 눈모양.
나는 온전히 그것에만 집중한다.

 

 

설육이 섞이고 더운 숨이 터지고 내 입술 사이로는 네 이름이 터진다. 
몇번이고 싸구려 창녀의 입술을 베어물고 그 안의 안까지 탐하며 네 이름을 부른다.

 

 

ㅡ리히트, 테일.

 

 

 

풀린 넥타이에도 나는 여전히 목이 졸리다.
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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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Accept.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의 얼굴에 네 얼굴을 덧씌우고
이름조차 묻지 않은 여자의 이름에 네 이름을 붙였다.

 

사랑이 아니라고 그런 것은 아니라고 고갤 저으며 14일.

 

그럴리가 없다고 자기 자신을 찔러 죽이고 만인의 연인 행세를 하기를 꼬박 336시간.

 

 

 

그 시간을 돌아. 나는 참으로 구질구질하고 병신같이 기어코 네게 돌아가 목줄을 맨다.
그 끝에 네 손 마디마디가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나는 나를 위한 수단으로-너에게 고백한다.

 

 

 

 

 

 

 

 

"늦은 거 알아. 엿같은 것도 알아. 뒈졌던 것도 알아. 빌어먹을 신이 두 번의 기회는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

네 손 끝에 목줄따위는 불살라 버린지 오래란 것도 알아.
그렇지만- 내가 왔어. 너를 사랑하는 내가.
나에게 너의 이름을 부르고
너의 입술을 탐하고
내가 너에게 호흡 한 점까지 속할 수 있는 기회를 줘. 리히트 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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