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여자가 죽었다.

 

 

 

 

 

 

남자의 전부였던 여자가 죽었다. 그녀는 홀몸이 아니었다. 자신의 아이를 품고 있던 여자의 죽음에는 이유가 없었다. 마피아들의 세력전쟁에 휘말려 그저 장을 보고 돌아오던 여자가 썩는 냄새가 나는 시체가 되었다. 개죽음. 그것은 하나의 시발점이었다. 관객을 잃은 그가 더 이상 설 무대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는 무대에서 내려와 화장을 지우고 정장을 고쳐 입은 채 총을 들었다. 단죄. 남자가 원했던 것은 단죄였다.

 

 

 

 

 

 

 

 

그래, 그리고 그 남자가 바로 나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벨 코츠. 아니, 리히트 테일에 대한 나의 짧은 회고록이다.

 

 

 

 

 

남자는 국가의 개가 되어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의감이란 필요 없다 느꼈다. 그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뿌리를 뽑는다. 단죄라는 목적은 남은 것이 하나 없는 그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크루즈에 올라탈 때까지도 그가 노리는 것은 시계도, 뭣도 아니었다. 후계자. 후계자를 없애고 벌레 새끼같은 마피아들 손에 모두 은팔찌를 하나씩 채워 주고팠던게 그의 마음이었다. 본심을 마음 속에 숨기고 제 방 문을 꽉 걸어 잠근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더이상 흔들지 못할 것이라 자신했다.

 

 

 

 

 

 

그리고 이 결심이 사실이 아님이 밝혀지는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남자가 개 한마리에 파산을 자청했던 탓이다. 아득하게 모래 마냥 정신이 바스라진다. 크루즈에 탄 내내 끔찍하게 체향에 홀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피폐해져버리고 말았다. 책임전가. 남자는 제 책임을 개에게 돌렸다. 개의 입에 직접 손을 들이밀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은채 개가 자신을 물었다 이야기했다. 남자의 비뚫어진 소유욕을 감내해주는것은 분명히, 개 뿐이라 믿었기에. 개는 완벽한 페르소나였다. 그가 삶의 모토로 삼은 페르소나. 단죄에 대한 욕구는 더 이상 크루즈에서의 남자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판단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질투에 귀가 멀고, 사랑에 눈이 멀어버렸기에.

 

 

 

 

 

 

 

 

"배에서 내리면 약지에 반지라도 끼워주지. 눈에 보이지 않는 목줄 대용이라고 생각해."

 

 

"그따위거 없어도 말했잖아. 주겠다고. 그래도- 굳이 끼워준다면 사양은 안하는데 내가 좀 변덕이 존나 심해서."

 

 

"반지니 뭐니 하는 예쁜 말과는 다르게 난 제법 더럽고 추악한 감정을 이 안에 품고 있는지라."

 

 

"어디 그 추악한 거 까발려보자고. 나는 그런거 끝내주게 좋아하거든. 시커멓고 더러운거."

 

 

 

 

 

 

 

 

 

SOLD OUT. 남자는 개에게 오버 페이를 외쳤고 놈은 남자에게 솔드 아웃을 외쳤다. 

 

 

 

 

 

 

 

"이제 환불은 없어. 조만간 경매끝을 외칠거니까. 두번은 뺏길 생각이 없거든"

 

 

 

 

 

 

 

 

아아. 이런. 약속은 지켰어야지. 끔찍한 거짓말쟁이. 결국 거대한 크루즈에 빼앗겨 버린건 내 쪽이 아닌가. 

 

 

 

 

 

 

 

 

장례식 날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남자는 얼마 있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나왔다. 흰 꽃을 사들고 가지도 않았고, 그것을 바치지도 않았다. 그저 미련을 가진 채 한참을 바라보다 조용히 나왔을 따름이었다. 운전대를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숨이 막혀 졸려 죽을 것 같은 기분이라, 갓길에 차를 대놓고 소리없이 울고 말았다.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남자는 둘 중 누군가가 그 배에 남는다면 자신일 것이라 믿었다. 목 줄을 풀어 제 관에 넣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은 건 자신이었다. 다시 한번, 혼자 남겨졌다. 남자는 다시 총을 든다. 그들에 대한 복수심이 다시금 그의 가슴안으로 물뱀마냥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그는 아마 앞으로도 얇고 길게 살겠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사족을 하나더 붙이겠다. 구차하게. 그리고 역시, '단죄'란 그를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그의 목숨 값이 누구의 것인지 끔찍하게 잘 알고 있는 탓이다. 구질구질하고 끔찍해도 삶을 연명하라고 스스로에게 명령한다.

 

 

 

 

 

 

그의 귓전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기에.

 

 

 

 

 

 

 


"막 좋다 싫다 쳐말하고 다니는 성격 아닌데-

 

딱 한 번만.
ㅡ사랑해.

 

어이고 쪽팔려라."

 

 

 

 

 

 

 

 

 

 

 

나는 너와 무슨 관계였을까. 너는 앞에선 내게 싸늘하게 빈정거렸고 뒤에선 사랑을 속삭였지. 위태위태한 관계였고, 누구에게도 떠벌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너를 지키는 방법이라 믿었기에.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노래를 들려줄걸 그랬어.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좀 더 꽉 안아줄걸 그랬어. 난 너에게 단 한번 사랑하는이란 수식어를 붙였고 너 역시 나에게 단 한번 사랑한다 진실된 소리를 터놓았다. 더 말해줄걸 그랬어. 시간은 빠르고 후회는 언제나 늦다.

 

 

 

 

 

 

 

 

 

 

 

 

나는 너가 원했던대로 앞으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출근을 하며 일상을 보내겠지. 언젠가 결혼을 할지도 모르고 아이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슴 속에 개 한마리를 묻을 공간 한 켠만큼은 어느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성역으로 만들 것이다. 이것은 속죄이자 단죄이며 너에 대한 업보이다. 개는 결국 남은 도장 여섯개를 모으지 못했다. 남자는 입술을 다시 한번 터트리지 못했다. 남자는 더이상 얇고 길게 살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지 않는다. 대신 조금 색다른 얘기를 하곤한다.

 

 

 

 

 

 

 

 

나한테 개가 하나 있었어. 그 개의 이름은―.

 

 

 

 

 

 

 

 

 

 

 

 

 

 

*fin.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