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새끼, 그건 네가 나를 부르는 호칭이었다.
애완견따위를 상상하고 붙인 애칭일지는 몰라도.
그런데 이걸 어째, 나는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교묘하고 계획적이라 네 모든 걸 집어삼킬 예정이거든.
이왕이면 귀여운 개새끼의 탈을 쓴 늑대정도로. 나를 소개하겠다.
지잉, 하는 소리와 주머니에서 느껴지는 진동.
-[나와, 당장]
거보라고. 귀여운 개새끼의 탈을 쓴 늑대, 혹은 식충식물.
넌 머리부터 발끝까지 잡아먹히는거야.
언젠가 정신을 차려보면 나없이는 숨도 쉬지못하는 병신새끼로 만들어줄게.
*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나에 대한 소개를 다시 해야겠다.
아아, 앞서 이야기한 늑대이야기말고. 그것보다 조금 더 앞의 이야기를.
르네 앙퓌즈. 가끔 내 이름이 아닌 것처럼 들리는 그 아득한 이름은 내 것이 아니다.
물론, 이름을 새로 짓고 난 후-, 그러니까 '그 일'이 있은 후에는 내 이름이 되었지만.
때때로 그는 그 이름에 대해 지대한 질투를 느끼는 듯 했다.
나는 내 진짜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기억해내야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때문에
네가 '벨 코츠'라는 진짜 이름을 말했을 때에도 내 이름을 이야기한 적 없다. 르네, 라는 자아는 나를 구성하는 일부분이고- 아니 어쩌면 지금의 '나'를 구성하는 99.9%의 물질일지 모르니까.
신파극이라면 신파극, 클리셰라면 클리셰일 일들이 나에게 있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내 눈앞에서 내 권총으로 머리통을 날렸고, 나는 그것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방관했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나는 그때 분명, 방관자였다. 내 몸을 날려 그 총알의 궤도를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소리를 질러 '르네'라는 그 여자가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다. 내가 구태여 그리하지 않은 것은 나는- 지쳤었기 때문이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새어나가기만 하는 애정에 지쳤다.
매일 밤 침대에서 걱걱이는 숨을 흘리며 내 목을 조르는 그 여자에게 지쳤다.
한 시라도 눈을 떼면 손톱이 전부 깨어지도록 벽을 긁고 사랑한다 외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여자를 상대하는 데 지친 것이다.
지쳤다는 단순한 이유로 죽음을 방관한 건-, 생각보다 나에게 힘든 일이 되었다. 예상한 것 이상으로.
사랑의 감정이라고는 남아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총알이 관통하고 바닥에 네 몸뚱이가 힘없이 늘어졌을 때에서야
아, 내가 이 여잘 사랑했구나. 하고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죄책감과 애정이라 부르기에는 더러운 것들이 점철되어 꿈을 구성했다.
내 목을 조르는 여자의 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름끼치는 고음,
이윽고 들리는 총탄의 파열음과 매캐한 화약 냄새,
살이 타는 냄새와 뇌수가 흘러나오는 진득한 소리.
내 꿈은 그런 것들로 구성되었다.
*
내 옆에 살아있는 온기를 두어도, 어둠이 멍자국 마냥 파랗게 새겨지는 새벽이면, 내 주변은 죽은 것들로 가득 찼다.
내 이름을 가진 여자가 현실을 지배했고 나는 또 숨이 막혔다.
이제는 좀, 편해지고 싶다 생각했을 때에도, 너는 또 내 꿈에 나타났다.
애원하고, 간청하고, 달래고, 온갖 짓거리를 다 해도 네 답변은 똑같았다.
-네가, 날 죽게 내버려뒀잖아?
빌어먹을 여자. 아니, 사랑하는-, 사랑했던 이.
이걸 사랑이라 불러야할지 그 범주는 참 애매하지만, 내 사랑했던 이.
*
그리고, 몇 년쯤 시간이 흘렀고, 나는 그 전의 인생과는 180도 다른 인생을 사는 남자가 되었다.
음주, 도박, 매춘. 할 수 있는 모든 더러운 일에 손을 댔고 단순히 쾌락에 취해 미래를 내던지는.
그리고 '재미'를 이유로 올라탄 그 곳에서 난 새로운, 장난감거리를 찾았다. 아아, 이렇게 이야기하면 화내려나.
개새끼 입에 착 들러붙는 개껌, 싸구려같은 표현이기는 하다만, 나는 널 찾았다.
붉은 색이 몇번이고 중첩되어 이제는 붉은 색이라기보다는 검정에 가까운 애정을 쏟아붓는 놈을 발견한 것이다.
내 숨 하나하나, 내 눈길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눈동자가 미치도록 섹시한 걸, 아마 넌 모르겠지.
-끌어내릴거야.
분명 나는, 네게 경고했다. 쌍방 과실의 여지를 두지 않기 위한 방어장치.
나는, 널, 끌어내릴거야. 나 없이는 숨도 쉬지 못하는 놈으로.
*
계획없이 움직이는 놈이라고 생각했겠지. 전략이라고는 짤 줄 모르는 돌대가리라고, 혹은 귀여운 애완견이라고 생각했겠지.
목줄을 스스로 찾아 온 순진한 새끼라고 생각했겠지. 그런데, 이걸 어째?
매일 밤 새벽, 몸을 뒤척일 때 네가 깨어있음을 느꼈다.
내가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를 때 부러 내 허리를 가득 껴안는 것도,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얕게 이를 박아넣던 감각도,
미안하지만 그 중의 9할은, 전부 봤다고.
모르는 척 네 몸을 더 껴안고,
모르는 척 네 귓가를 잘근거리고,
모르는 척, 모르는 척, 모르는 척,
좀
더
내려와
,
리
히
트
.
*
"존나 아프다고 조퇴를 하던지, 사건이 터졌다던지, 경찰총장님이 널 불렀다던지,
리히트 테일이 니가 지금 좆나게 보고싶다고 하던지 핑계 아무거나 말하고 뛰어 나와. 빨리. 집 앞으로"
숨 가쁘게 터져나오는 용건에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멍청한 새끼.
나는 멍청히 전화기를 붙들고, 못 이기는 척 집으로 향하고.
바다를 가자는 네 말은 실로 우스운 것이었다.
사춘기를 지나는 계집애의 감성도 아니고, 너와 나의 관계와는 참 안 어울리지 않는가.
사랑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참으로 낯뜨겁고 민망한 감정을 서로에게 쏟아붓는 주제에, 바다?
*
시동을 걸고, 짧은 진동이 느껴진다.
엑셀을 밟자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차체가 앞으로 밀려나가는 기분이 몸을 감싼다.
눈을 힐끔 돌려 네 얼굴을 확인하면, 너는 큰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눈을 피한다.
그것이 사뭇 마음에 들지 않아 떼었던 입술을 다시 닫는다.
숨막히는 적막이 목을 죄이고 엔진소리와 차창으로 흘러들어오는 바람소리만이 차 안을 지배한다.
다시, 고갤 돌렸을 때 너는 눈을 감고 불안한 숨소리를 내뱉는다.
숨기는 것이라도 있는 사람마냥 주머니에 손을 구겨넣고.
그 모습에 나는, 다시 네게는 보이지 않을 웃음을 삼킨다. 네 손에 무엇이 쥐어져 있을지, 상상되기 때문이다.
짠 바다 내음이 확 머리칼을 향해 달려드는 바닷가에 도착해서도
너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마냥 나를 향하지 않는다.
나는 부러 모르는 사람처럼 네 앞에 선다. 이제는 조금 차가워진 바닷물에 손을 집어넣는 너를 가만 내려본다.
그 모든 게 조금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일이라서.
이내 그 젖은 손이 주머니로 향하고 빈 유리병 하나가 끌려 나온다. 도살장으로 향하는 가축마냥 주륵, 하는 소릴 내며 끌려나온다.
그리고 이내, 파삭거리는 작은 파열음과 네 손안에서 숨 하나가 온전히 죽어간다. 공기중으로 퍼지는 기체는 잡을 일 없이 퍼져나가고 나는 사뭇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널 살핀다. 울 것 같은 얼굴. 혹은-, 집착과 소유욕으로 번뜩이는-, 미치도록 섹시한 얼굴. 아마 넌 모르겠지.
얼마나 뜯었는지 엉망인 네 입술이 열리고
"잊어-, 다 잊어.
이제 쳐."
비딱한 웃음과 함께 몇 마디의 말이 터져나온다. 시꺼멓게 내리치는 파도와 네 머리칼의 색이 내 목을 조이는 것 같아 그것이, 나를 미치게 만든다.
그의 예상과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주먹을 들어 얼굴을 내리치는 대신에.
나는 손을 들어 그의 깨어진 손바닥을 쥔다. 찐득한 피의 감각이 그의 손에서 내 손바닥에 묻어난다.
어둠이 내려앉은 바닷가,
바닷물의 짠 내음과 네 손바닥에서 흐르는 비린내.
어디로 흘러가는 지도 모를 유리병의 조각들.
경련하듯 떨리는 네 손을 쥐어 깍지를 껸다. 상처가 벌어지게, 더 틀어지도록 쥐고는 고개를 기울여 네 귓가에 속삭인다.
"ㅡ기다리고 있었어."
말했잖아? 주인이 되게 해주겠다고.
전부 빼앗고 부숴. 내가 너에게 그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