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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한테 물렸다.
그 것도 아주 질 안좋은 놈으로.

 

 

 

 

 

                                                                      ―first impression

 

 

 

 

 

 

 

 

첫 만남은 선상에서였다. 놈은 구역질을 하며 벽에 기대어 있었고 나는 그것이 어쩐지 한심해 동류인 척 옆에 있어주었다. 첫인상은 그저 구토나 하는 한심한 작자라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독특한 놈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그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 물론 부정적으로. 정확하게 말해선, 개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저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면 그것은 분명히 암캐였다. 남녀 가리지 않고 하나같이 그 욕설과 함께 꼬리를 살랑이고 다니니 그리 여긴 게 당연했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분명 천박한 욕설뿐인데 이상하게 눈길이 자꾸만 가는 것이 신기했다.

 

 

 

스스로 말하더라. 자신은 꼬리치는 데엔 사뭇 재능이 있다고. 그렇게 한 마디로 정의 내리고 생각하기를 멈췄다. '르네 앙퓌즈'란 이름을 불러야 할 이유가 하등 없었고 그는 그저 내게 '개'에 불과했다. 구토를 여기저기하고 다니며 타인에게 제 흔적을 남기고 다니는 bitch. 인상은 최악이었다.

 

 

 

 

 

 

 

 

―Obsessed

 

 

 

 

 

 

 

 

 

의외로 개는 눈빛이 살아있었다. 시선의 이끌림.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아는 척을 하는 순간부터 끔찍한 시간이 시작될 것 같았다. 나 역시 저 녀석이 꼬리를 살랑이며 놀아주는 그저 그런 인간들 중 하나가 아닌가. 콜 걸에게 진심이 되면 안 되지. 그네들에겐 가슴에 지폐를 꽂아주는 것이 최고의 예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어느샌가 입에서 터져 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더 이상 개를 그로 보지 않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개'는 '그'가 되었다. 언제부터? 아니면 처음부터? 어느 순간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그 추악한 감정에 잡아먹힌 것이다. 그가 말했다. 넌 흰색이야. 나는 대답했다. 난 흰색이 아니야. 오히려 저열하고 더러운 검정이 어울리는 편이지. 소유욕과 질투란 감정이 한데 점철되어 그것은 표출하고 싶지 않아도, 저도 모르게 그를 담는 눈길에서건, 그를 만지는 손가락 끝에서건 내 몸 어느 구석구석에서 추적하게 흘러나오는듯했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그것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싶어 숨기는 것이 답이라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개는 개답게 처신해. 주제 파악하란 소리야. 어설픈 타박으로 마음을 감춘다. 내 감정을 감추고 싶었던 탓이지. 이것은 회고록이고, 일기이며, 그 어느 때보다 진실된 고백이다. 마음속 저 너머에 감추고 성당의 신부에게나 고해성사 할 말을 나는 너에게 직접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검은 속내를 이렇게 나의 입으로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 상상조차 못하겠지.

 

나는, 싫어. 네가 다른 이들에게 헤프게 웃음을 퍼다 주는 게 싫고 네가 꼬리를 살랑이며 다른 이들을 쫓아다니는 것도 싫어. 혼자 남게 되면 도망가지 못하게 아킬레스건을 끊고, 다른 이들을 보지 못하게 눈알을 뽑고, 힘줄을 모두 끊어내어. 묶어 가둬놓고 싶다는 생각을 수차례나 했다. 그 뒤엔 당연한 수순으로 스스로를 자책했다. 타인이 마크를 남긴 곳에 부러 이를 세워 도장을 찍는다. 몇 명의 입술이 지나쳐도 상관없으니 기억은 내 것만 하라 명령한다. 영역 표시와 같은 수컷의 하찮은 자존심이라고 여겨줘. 언젠가 그에게 구매를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놈은 습관적인 미소로 웃었다.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 습관적인 미소로 대꾸했을 뿐이다. 교양이고 나발이고 본능 앞에선 아무것도 소용없다는 것을 덕택에 깨달았다. 깨달았던 순간, 나는 너 이름을 불렀던 거지. 이건 일렬의 진화 과정이다. 더 이상 그는 개가 아니었다.

 

 

 

 

 

 

 

―Recite

 

 

 

 

 

 

 

 

 

"르네."

 

 

그에 답하듯 넌 내게 내 이름을 불러주었고.

 

 

"이깟 이름이 뭐라고 집착하는지, ―리히트"

 

 

 그것이 하나의 큰 전환점이었다. 고삐가 풀리고 브레이크를 놓아버린다. 견고하다 생각했던 내 방어기제가 모래성 마냥 파도 한 번에 쓸려 내려간다. 그 이름을 부르는 말 한 마디에, 나는 이성을 끊을 놓았다. 우스운 일이다. '리히트 테일'은, 분명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 그는 연기자였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연기를 하지 않았다. 굉장히 충동적인 기분으로 놈에게 지껄여댔다. 마음속 본심 깊은 곳에 있는 쓰레기 같은 감정들을 한데 끌어모아.

 

 

"지금을 기점으로 난 너를 작정하고 길들일 거고, 너한테 길들여질 거야. 한마디로 작업을 걸겠단 소리지. 그게 싫다면 이 자리에서 미련 없이 당장 꺼져."

 

 

미련 없으면 꺼져.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버려. 내게 희망 따위를 주지를 마. 박차고 일어난다면 완벽하게 털어내겠다 스스로 다짐했다. 의미 없는 상대한테 애정을 구걸하는 일만큼 끔찍한 일은 없었던 탓이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어디에서도 꺼질 생각이 없어. 좀 더 화끈하게 걸어봐, 작업."

 

 

 그는 꺼지지 않았고, 나는 안도했다. 실로 우스운 일이었다. 안도감과 동시에 나는 확신했다. 그가 만일 박차고 일어났어도 나 역시 그 자리에서 함께 일어나 등을 껴안았을 것이다. 대답은 모호했고 난 오랬동안 생각했다. 넌 내게 희망 고문을 하는 걸까, 아니면 아직 단물이 미약하게나 남아있는 장난감으로 보는 걸까. 상관없어. 흔들고, 박고, 싸지 않아도 그저 어린애처럼 뼈가 으스러지도록 꽉 껴안고만 있어도 좋다는 것을 깨달은지 오래이니. 하지만 나는 욕심을 좀 더 내야겠어. 그가 그랬다, 좀 더 열심히, 못내 고개 돌리게 다잉을 외치게 해보라고. 그래서 이것이 르네 앙퓌즈에게 바치는 나의 온전한 대답이다. 만일 이것이 설령 파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하더라도 나는 최고 출력으로 엑셀을 밟겠어.

 

 

 

 

 

 

 

―Be bound

 

 

 

 

 

 

 

 

나는 또다시 개한테 물렸다. 그것도 아주 영악한 놈으로.

 

 

그래, 물어. 실컷 물어뜯어. 피가 나고 살갗이 찢어져도 아무래도 좋은듯하니, 내가 드디어 미친 모양이다. 만신창이가 되어 그 이빨에 숨을 못 쉬게 된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좋으니, 교만한 개새끼에게 나는 한가지 고백을 해야겠지.

 

 

내 몸뚱이, 내 인생 전부를 이 경매에 걸지. 맞아, 만지는 거 싫다는 말.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을 작정이야. 그리고 그 소릴 듣지 않을 수 있는 건 이 지구 통틀어 어느 운 좋은 개새끼 한 마리뿐이지. 이게 내가 부를 수 있는 가장 큰 금액이야. 파산 따윈, 개 한 마리에 비하면 너무 적은 대가 아닌가. 낙찰을 해. 다이를 외쳐. 르네. 영화 표를 손에 쥐여주었을 때 나는 친절하게도 예고편을 두 번씩이나 했어. 개봉일은 미루지 않아. 그 끝에 내가 내놓은 작품은 네가 보고 싶다는 <말괄량이 길들이기>. 주연 배우 르네 앙퓌즈, 감독 리히트 테일.

 

 

얌전히 품에 안겨 목 줄을 찰 때 되지 않았나, 이젠?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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